한줄 요약
1962년 5월, 대한증권거래소(거래소)가 결제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주식거래가 정지된 사건으로, 거래소의 ‘대증주(거래소가 발행한 주식)’ 과열·결제 방식의 취약성·권력형 주가조작 의혹이 결합되어 발생했다.
1) 정치·경제적 배경 (왜 일어났나)
박정희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과 내자(국내자금) 동원 정책 하에서 정부가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려 했다. 1962년 1월 증권거래법 제정으로 거래소를 주식회사화하고 ‘주식시장 육성’ 기조가 강해졌다.
그 결과 주식 비중이 급증했고(1960년 17% → 1961년 33% → 1962년 99%로 재편), 소수 종목(특히 대한증권거래소 발행주, 한국전력 등)에 투자 집중이 일어났다.
2) 사건의 전개 — 핵심 타임라인 & 규모(주요 수치)
초기 과열(1961 말~1962년 초): 거래소의 ‘대증주’ 수요가 폭증. (대증주 가격: 1961년 7월 약 0.031원 → 1962년 3월 0.92원 → 1962년 4월 4.25원 등 급등).
거래대금 폭증(1962 상반기): 거래량(월별) — 2월 8억8,540만 원, 3월 34억2,500만 원, 4월 118억4,500만 원, 5월 252억1,000만 원. (거의 대부분이 청산거래·이연결제 형태로 이뤄짐).
결제불이행·휴장(5월 말~): 결제대금이 급증하자 거래소의 결제능력이 바닥나고 일부 증권사가 결제불능 상태에 빠졌으며, 5월 31일 거래소는 휴장에 들어감. 정부가 긴급지원(약 280억 환/원 규모의 융자 등)을 투입해 단기적으로 결제를 마무리했으나 이후에도 반복적 휴장·무기휴장(최대 73일) 등 시장 불안이 지속됐다.
3) 사건 발생 메커니즘 — 왜 결제불능이 되었나
당시 거래는 익일결제(청산거래)가 기본이나, 증거금을 내고 결제 지연(이연)을 허용하는 관행이 있었다. 거래량이 갑자기 폭증하면서 ‘이연결제’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매도자에게 현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를 거래소가 보증해 주다 보니 거래소 자체의 유동성이 고갈되었다.
또한 거래소가 주식회사로 전환되면서 발행한 대증주(유상증자)를 통해 공급이 늘자 가격 안정이 깨졌고, 일부 대형 증권사(매점세력)가 시세를 떠받치려다 현금이 바닥나면서 연쇄 실해(實害)가 발생했다.
4) 주요 인물·권력 연결(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는 윤응상(일흥증권 사장) 등이 지목된다. 윤응상 등 일부 증권업자와 중앙정보부(당시 권력층) 인사 간의 결탁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 사건은 같은 시기의 다른 권력형 비리 사건들과 함께 ‘4대 의혹사건’으로 불리며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수사·재판과정에서 구속자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무죄 판결·사면 등으로 책임이 제대로 묻히지 않았다는 비판과 의혹이 남았다(처벌 미비·권력 유착 의혹).
5) 정부 대응과 단기·장기 결과
긴급융자(한은·정부): 거래소 결제대금 보전을 위해 재무부와 한국은행 자금이 투입(총합 약수백억 환/원 규모). 일시적으로 결제 문제를 마무리했으나 신뢰회복은 실패.
휴장 반복·시장 위축: 1962~1963년에 시장은 여러 차례 휴장했고, 1963년 일부 기간에는 73일간 무기휴장을 기록. 그 결과 개인투자자 이탈과 주식시장 기능 약화가 장기화되었다.
제도적 변화: 사건 후 거래소 조직·청산·증권금융 등 제도적 미비점이 드러나고, 거래소 운영체제(공영화 등)·증권거래법 등 관련 제도의 개편이 뒤따랐다. 하지만 신뢰 회복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6) 의의(요약된 교훈)
제도 미비(청산·결제 시스템)와 과도한 레버리지(이연결제)가 결합하면 단기간에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줌.
권력·자본의 결탁 의혹으로 인해 시장 신뢰가 크게 훼손되면 자본시장 발전을 장기간 저해할 수 있음(한국의 경우 증시 활성화 지연).
1962년 한국 증권파동 연표 (월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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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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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 특징 |
| 1961년 7월 | 대증주 가격 약 0.031원 | 거래소 발행 주식 ‘대증주’ 시장 등장 |
| 1961년 12월 | 증권거래법 제정 → 거래소 주식회사화 | 주식시장 제도적 기반 마련 |
| 1962년 1월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작 | 내자 동원 정책, 증시 육성 강조 |
| 1962년 2월 | 거래대금 8억8,540만 원 | 증시 규모 급증 시작 |
| 1962년 3월 | 거래대금 34억2,500만 원 | 거래량 폭증, 가격 급등 |
| 대증주 0.92원 | ||
| 1962년 4월 | 거래대금 118억4,500만 원 | 투기 절정, 이연결제 확대 |
| 대증주 4.25원 | ||
| 1962년 5월 초 | 거래대금 252억1,000만 원 | 결제대금 부담 한계 도달 |
| 1962년 5월 말 (5·31) | 결제 불이행 → 거래소 휴장 | 대규모 결제불능 사태 발생 |
| 1962년 6월 | 정부 긴급 자금지원 (수백억 환/원 규모) | 한은·재무부 융자 투입 |
| 1962년 하반기 | 증시 반복 휴장 → 투자자 신뢰 상실 | 시장 기능 약화, 대규모 이탈 |
| 1963년 | 최대 73일 무기휴장 | 한국 증시 역사상 최악의 장기 휴장 |
| 사후 영향 | 제도 개편(증권거래법 개정, 공영화 논의) | 청산·결제제도 개선 필요성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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