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17세기 말~18세기 초, 프랑스는 전쟁으로 막대한 국가부채를 안고 있었음.
스코틀랜드 출신 금융가 **존 로(John Law)**가 루이 15세 정부의 금융 개혁을 맡음.
존 로는 종이화폐 제도와 중앙은행 개념을 도입하고,
미시시피 회사(Compagnie d’Occident)를 설립하여 북미 식민지(루이지애나 지역) 무역 독점권을 확보.
2. 버블 형성 과정
1717년 – 미시시피 회사 설립, 아메리카 대륙의 금·은·자원 개발 기대감 조성.
1719년 – 미시시피 회사와 프랑스 국채를 교환 → 국채를 줄이고 회사를 키우는 구조.
미시시피 회사 주식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며 파리 시민·귀족·정부 관리까지 투자에 몰림.
1719~1720년 초 – 주가는 500리브르 → 10,000리브르 이상으로 폭등.
파리의 루아얄 거리(오늘날의 은행가)에서 주식 거래 열풍이 매일 벌어짐.
‘돈을 벌기 위해 파리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려다녔다’는 기록 존재.
3. 붕괴 (1720년)
실제 아메리카 식민지 개발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고, 수익도 미미.
과도한 지폐 발행으로 인플레이션 심화, 지폐 가치 폭락.
투자자들이 대거 주식 매도에 나서면서 1720년 여름, 주가가 10,000 → 500리브르 이하로 폭락.
존 로는 정부의 신뢰를 잃고 도망, 미시시피 회사는 붕괴.
4. 결과와 영향
프랑스 경제 전반에 심각한 충격 → 금융 제도에 대한 불신 확산.
국가 재정 악화는 그대로 남아, 훗날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됨.
지폐 제도에 대한 신뢰 상실 → 프랑스에서는 이후 오랫동안 지폐 사용 기피.
5. 의의
근대 금융 혁신(지폐, 중앙은행, 국채 전환)을 시도했으나, 투기와 과잉 발행으로 실패.
사우스시 버블과 동시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두 사건은 18세기 유럽의 쌍둥이 금융 버블로 불림.
오늘날에도 근거 없는 기대 + 국가 지원이 결합된 투기 버블의 대표 사례.
미시시피 버블 (1720, 프랑스)
| 시기 | 사건 | 특징 |
| 1717년 | 미시시피 회사 설립 | 루이지애나 식민지 무역 독점권 확보 |
| 1719년 | 국채와 주식 교환 시작 | 프랑스 국가부채 경감, 투자자 모집 |
| 1719~1720년 초 | 주가 폭등 | 500리브르 → 10,000리브르 이상, 파리 전역 투기 열풍 |
| 1720년 중반 | 버블 붕괴 시작 | 실제 수익 부진, 과도한 지폐 발행 → 인플레이션 발생 |
| 1720년 말 | 주가 폭락 | 10,000 → 500리브르 이하, 존 로 도망 |
| 결과 | 금융 신뢰 붕괴 | 프랑스 지폐 제도 불신, 국가 재정 악화 지속 |
| 의의 | 18세기 대표 금융 버블 | 사우스시 버블과 함께 "쌍둥이 버블"로 불림 |